지난 글에서는 스스로를 확장하는 도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확장' 이전에 업무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통제'라는 주제를 해부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처음 실무에 투입되었을 때를 떠올려 볼까요. 주니어 레벨에서는 보통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위해 상사의 철저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입니다. 이것은 조직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통제죠. 그런데 위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다…문득…어느날.. 이런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00님. 다 좋은데 좀 더 주도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시키는 대로 잘 따랐을 뿐인데, 이제 와서 주도적이지 않다니요.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 앞에서는, 대부분 어이가 없으면서 억울한 감정과 함께 멘붕에 빠집니다. 다른 말로 '통제에 따르는 것'과 '주도적으로 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죠.
저는 이런 고민이 해결된 건 역설적이게도 업무량이 늘어나고, 리딩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지면서부터였습니다. (어떻게보면 어쩔 수 없이 일을 많이 하다보니 해결된..) 맡은 일이 커지니 자연스레 책임감도 커지고, 단순히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넘어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시간이 지나 이런 마음들이 하나둘 모여서, 저의 일하는 방식으로 정해졌고 이 방식들을 기반으로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고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과정을 차분히 복기해 보면 '타인의 통제'가 '나의 통제'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주도성이 발생하지 않나 싶어요. 업무 초반에는 상사가 정해준 데드라인과 퀄리티가 스스로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업무가 서서히 익숙해지고 욕심이 생긴다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거든요. "이 정도면 됐어"가 아니라 "이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 해"라며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즉, 통제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통제의 리모컨을 '남'이 아닌 '내'가 쥐게 된 것이죠.
이렇게 자기 규율이 선명해지면, 이는 곧 리소스의 효율화로 이어집니다. 규율이 없을 때는 매 순간 '이게 맞나?'를 고민하며 판단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이 확립되면 불필요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확 줄어들어요. 이전에는 복잡하고 막막해 보이던 업무 덩어리들이, 나의 규율이라는 렌즈를 통과하면 몇 단계의 프로세스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문제를 풀어낼지' 고민하는 시간이 단축되니, 한정된 리소스를 온전히 실행과 퀄리티 향상에 쏟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업무에서의 자유는 '남이 나를 통제하는 총량'보다 '내가 나를 통제하는 총량'이 더 클 때 얻어집니다. 상사가 지적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문제를 파악하고 수정한다면, 타인의 개입이 들어올 틈이 없어지니깐요.
물론, 이 말이 곧 무턱대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스스로의 확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셜록 홈즈가 현장을 관찰하며 단서를 찾아내듯,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집요하게 관찰하고 질문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빈틈을 메우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면, 그 확신을 토대로 나만의 규칙(규율)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곧 '주도성'이 아닐까 싶네요.
정리하자면…
주도성은 타인이 쥐고 있던 통제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가져와, 스스로 더 높은 기준과 목표를 설정하는 '자기 규율'을 세울 때 발생한다.
나만의 명확한 규율이 확립되면 불필요한 고민과 판단 시간이 줄어들어 리소스 효율화가 가능해지고, 남은 에너지를 퀄리티 향상에 쏟을 수 있다.
결국 '내가 나를 통제하는 총량'이 '남이 나를 통제하는 총량'을 넘어설 때 타인의 개입이 사라진 진정한 업무의 자유와 주도성을 얻게 된다.